2003년 8월4일 월요일. 아침부터 기쁜 소식. 이관우(25·대전)가 2003올스타전 최다득표자로 선정됐단다. 왠지 좋은 일만 생길 것 같은 기분에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내일 있을 동아리 약속을 챙기고 있는데 전화가 울린다. 처음 보는 번호. 갑자기 며칠 전 이관우 인터뷰신청했던 게 언뜻 머리를 스쳤다.

‘에이 설마∼’하며 전화를 받는 순간 수화기 저쪽에서 들려오는 말,“여기 스포츠투데입니다.” 오,해피데이!

▲난 축구선수지 연예인이 아니다

대전구단 사무실에서 처음 만난 이관우는 찢어진 청바지에 꽃무늬 남방이 머리스타일과 잘 어울렸다. 조금 긴장한 탓에 어색한 분위기를 돌리기 위해 옷차림이 멋지다고 했더니 재치 있는 대답이 돌아온다. “이게 정우성 스타일인데요,혹시 들어보셨어요? ‘미친X 패션’이라고.” 역시 듣던 대로 유머가 넘친다.

올스타 인기투표에서 1위를 한 이관우이지만 정작 본인은 무덤덤하다. 그가 원하는 것은 ‘인기 있는 선수’가 아닌 ‘실력 있는 선수’이기 때문이다.

“저는 97년 청소년대표팀에 있을 때부터 언론을 통해 너무 많이 띄워졌어요. 실제로 70정도였다면 이게 100정도로 부풀려지다보니 정말 부담스러웠어요. 게다가 부상으로 제대로 활약하지도 못했고. 선수는 당연히 경기로 평가받아야죠.”

▲2006년 독일에 가고 싶다



체력이 약하다는 평가도 족쇄처럼 이관우를 따라다닌다. “체력이 약하다는 소리가 듣기 싫어 운동도 더 열심히 하고 보약도 많이 먹는다. 체력보강에 좋다는 보약을 보내주시는 팬들이 많아 얼마 전에는 산삼도 먹어봤다”고 자랑아닌 자랑이다.

그는 프로데뷔 후 처음으로 최근 3경기 연속 전 경기를 소화해냈다. “프로 100경기를 소화하고 은퇴하는 게 목표”라며 던지는 농담이 가슴아프다.

다행인 것은 지난 5월 잠시 대표팀훈련에 참가한 뒤 해볼 만하다는 자신을 얻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스스로 내리는 평가는 아직 냉정하다. “전 지금 대표팀에 올라갈 수준은 못 돼요. 하지만 언젠가는 꼭 올라갈 겁니다. 특히 2006독일월드컵은 반드시 뛰고 싶습니다. 나이로 봐도 앞으로 2∼3년이 제 축구인생의 전성기가 될 텐데 월드컵은 뛰고 은퇴해야죠. 해외에 진출하려는 것도 경제적인 이유도 있지만 실은 대표팀 때문이에요. 해외파는 대표팀 선발에 우선 고려대상이 되잖아요.”

▲돈벌면 결혼한다



많이 알려진 대로 그에게는 대학 1학년 때부터 사귄 동갑내기 여자친구가 있다. 7년이면 상당히 긴 시간이고 여자친구의 나이도 슬슬 부담이 될 듯싶어 결혼계획을 물었다. 그랬더니 “돈벌면 결혼하려고요”라며 웃는다.

그리고는 이내 “내년쯤 할 생각입니다. 결혼은 일찍하고 싶었는데 한번 때를 놓치고 나니까 계속 미뤄지게 되네요”라고 덧붙인다. 지난 2000년 J리그 진출을 시도할 때 결혼해서 일본으로 건너갈 계획이었다.

벌어놓은 돈이 없다는 말은 좀 뜻밖이었다. 원래 연봉이 그리 많지도 않지만 워낙 부상과 재활을 반복하느라 돈을 모을 틈이 없었다고 한다. 지난해 독일에서 2개월 동안 재활할 때도 전부 자신이 부담했다.

▲축구는 나의 운명



대전 팬으로서,그리고 이관우 팬으로서 나는 지난 시즌 부천과의 마지막 경기를 잊을 수가 없다. 당시 대전은 한 시즌 동안 단 1승밖에 거두지 못해 선수도 팬도 무기력한 상태였다. 더구나 마지막 경기였기에 선수들의 플레이는 성의가 없었고 서포터스 분위기도 가라앉아 있었다.

하지만 이관우는 달랐다. 뛰고 또 뛰어 서포터스를 감동시켰다. 그는 그런 선수다. “경기장에 들어서면 뛰고 싶은 마음을 주체할 수 없다. 그러다 보니 종종 ‘오버’하기도 한다”고 말한다.

분홍신을 신으면 쉼 없이 춤을 춰야 하는 것이 발레리나의 운명이라면 이관우에게는 축구화가 바로 ‘분홍신’인 것이다. 이관우가 한국축구를 위해 밤하늘에 빛나는 ‘시리우스’처럼 아름다운 춤을 출 날이 올 것을 나는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