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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수들에게 축구경기는 전후반 90분이지만 코칭스태프는 항상 '경기 중'이다. 경기 전에는 상대팀 전술을 분석하고 대응전략을 마련해야 하고 경기 중에는 적절한 전술변화와 선수교체로 경기를 유리하게 이끌어가야 한다. 주심의 종료 휘슬이 울리면 겨우 한숨 돌리지만 곧바로 다음 경기에 대한 고민이 벌써부터 어깨를 짓누르기 시작한다. 스포츠투데이 임지오 축구팀 기자가 올시즌 K리그 태풍의 눈으로 등장한 대전의 1라운드 마지막 경기를 통해 치열한 승부를 진두지휘하는 '벤치들의 전쟁'을 경험해봤다.
■경기는 이미 시작됐다
오후 3시30분 최윤겸 감독의 방. 이영익 코치가 코칭스태프 회의를 하기 위해 들어온다. 경기시간까지는 아직 4시간이나 남았지만 코치들의 경기는 지금부터 시작이다. 임기한 코치는 길이 막혀 경기장으로 바로 오기로 했다. 상대팀 대구의 올시즌 전적과 예상 라인업이 적힌 종이가 탁자 위에 펼쳐진다. 한쪽에는 스포츠신문이 널려 있다.
최감독이 예상 라인업이 적힌 종이를 내놓으며 “어떻게 된 게 5개 스포츠지가 다 달라”라며 슬쩍 웃는다. 노련한 박종환 감독의 연막전술이다. 반면 대전은 5개지 모두 똑같다. 선발 라인업을 보고 그날의 전술을 미리 엿보는 것도 팬들의 즐거움이라는 것이 최감독의 생각이다. 옆에서 보고 있자니 몇 년 전 프로야구에서 선발투수 예고제를 놓고 감독들이 신경전을 펼치던 것이 생각난다. 유력한 2가지를 놓고 대응전략을 체크한 다음 선수단 미팅룸으로 향한다.
■사상 최강의 리저브
오늘 경기의 키포인트는 올시즌 처음으로 선발로 나서는 이관우를 어떻게 활용하느냐다. 이관우의 정확한 패싱과 탁준석의 빠른 발에 기대를 걸고 있다. 탁준석은 올시즌 첫 출전이다. 스트레칭으로 몸을 푸는 탁준석의 눈이 의욕으로 빛난다. 이관우는 종아리 마사지를 받으며 긴장감을 조절하고 있다.
경기시작 5분 전. 선수들이 최감독을 중심으로 모인다. “원정경기니까 욕심부리지 마라. 상대가 거칠 게 나올 게 분명하니까 흥분하지 말고 심판에게도 절대 항의하지 마라.” “이기고 지는 것은 상관없다. 우리 경기를 하면 된다. 자,하나! 둘! 셋! 어이!”
11명의 스타팅 멤버의 어깨를 두드리며 앞세워 보내고 후보 선수들은 라커룸에 남았다. 최은성 장철우 김영근 김은중 등 쟁쟁한 멤버들이다. 장기레이스에 대비한 체력 비축과 후보군 선수들에게 경기에 뛸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서 사기를 끌어올리는 1석2조의 효과를 노리는 최감독의 전술이다. 최고참 최은성이 “사상 최강의 리저브라니까”라며 농담을 던지자 한바탕 웃음이 쏟아진다.
■패배의 기억이 낯선 팀
“삐익∼삑.” 주심의 휘슬이 울리고 90분간의 경기가 끝났다. 1-2 역전패. 올시즌 3번째 패배이자 첫 역전패다. 느낌이 낯설다. 어느새 대전에 패배는 그렇게 낯선 것이 돼버렸다.
심판들이 걸어나오자 최감독이 다가가 인사를 건넨다. “수고하셨습니다.” 그리곤 박종환 감독을 찾아가 축하인사를 하고 돌아오는데 한쪽에서 김영근이 눈물을 뿌리고 있다. 자신의 퇴장이 패배의 빌미가 됐다는 자책이다. 경고 없이 곧바로 레드카드를 꺼낸 심판도 야속하다. 그런 김영근에게 최감독이 다가가 어깨를 두드리며 위로한다. “괜찮아, 네 잘못이 아니야.”
TV인터뷰를 기다리는 최감독의 얼굴에 근심이 스친다. 당장의 패배보다도 이관우 김영근의 퇴장과 알렉스 호드리고가 부상당한 것이 걱정이다. 1라운드 성적 6승2무3패, 12개팀 가운데 3위. 지난해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이 좋은 성적이다. 하지만 이제 겨우 1/4 지났을 뿐, 갈 길은 아직 멀기만 하다.
다행히 다음은 5연승 기록을 이어가고 있는 대전 홈경기다. 관중석을 가득 메운 홈팬들의 함성이 떠오르자 자연 주먹에 불끈 힘이 들어간다.
/임지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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